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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기획
임지선 기자가 ‘그 쇳물…’ 챌린지 참여한 까닭
가수 하림의 노래·제안으로 시작된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
용광로 추락사 20대 청년 추모한
시를 읽고 밤새 달려간 사고 현장
1600도 쇳물에 뼛조각 몇개만 남아
지난 10년간 되풀이되는 사고에도
한해 추락사 376명, 변함없는 현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청원 10만
‘그 쇳물’은 현재 상징물 형태로 보존
마음 모으면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2010년 9월 충남 당진의 한 철강회사에서 용광로에 떨어져 숨진 노동자를 위한 입관식이 열리고 있다. 사흘을 내리 식힌 쇳물 위에서 바스러질 듯한 뼛조각을 수습해 입관식을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챌린지)’에 많은 시민이 동참했다. 챌린지를 제안하며 가수 하림이 부른 노래는 10년 전 충남 당진의 한 철강회사 용광로에 떨어져 숨진 20대 청년노동자를 추모한 시(‘그 쇳물 쓰지 마라’)를 가사로 삼았다. 당시 사고 현장을 취재한 임지선 기자도 ‘함께 부르기’에 참여했다. 임 기자는 당시 경찰과 함께 사고 용광로에 진입해 현장의 참혹함을 기사로 전했다. 그가 10년 전 취재수첩을 다시 열며 챌린지에 동참한 까닭을 썼다. ‘그 기사’(
<한겨레> 2010년 9월11일치 ‘쇳물 식은 자리에 뼛조각들…눈물의 입관식’)의 계기가 된 한 편의 시가 10년 만에 한 곡의 노래로 재생됐다. 그 노래를 듣고 부르며 나는 10년 전 취재수첩을 다시 펼쳤다. 2010년 용광로(정확한 명칭은 ‘전기로’이나 이 기사에서는 ‘용광로’로 쓰기로 한다) 추락 사망 노동자를 기리며 한 누리꾼이 썼던 ‘그 쇳물 쓰지 마라’란 시는 당시 사회부 기자였던 나를 사고 현장으로 이끌었다. 그 시에 곡을 붙여 2020년 가수 하림이 부른 노래
는 그때 그 취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줬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후진적 산재 사고로 죽어가는 현실 속에서 기자가 더 집요하게 취재하고 써야 한다고, 시와 노래가 말하고 있다.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시 ‘그 쇳물 쓰지 마라’ 전문) 2020년 9월,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에서 한 영상과 마주했다. 영상 속에서는 가수 하림이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요즘도 일하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는다. 일하다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노래를 만들고 함께 부르는 캠페인을 만들었다”며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챌린지)’를 제안했다. 노래를 듣는 순간, 10년 전 직접 사고 현장인 용광로 안에 들어서며 느꼈던 열기가 얼굴에 훅 끼치는 듯했다. ‘함께 부르기(챌린지)’ 참여를 위해 처음으로 직접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찍고 보니 어색하기 그지없어 열번을 넘게 찍고 또 찍었다. 영상은 자기소개로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댓글 시가 붙었던 바로 그 사건, 10년 전 충남 당진의 한 철강회사에서 벌어졌던 용광로 추락 사고를 현장에 가서 직접 취재했던 <한겨레> 임지선 기자입니다.”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의 함께 부르기를 제안한 가수 하림. 한국방송 유튜브 갈무리
2010년 9월9일 비가 내려 쌀쌀한 가을밤, 나는 무작정 충남 당진으로 향했다. 서울의 강남 지역을 담당하는 사회부 기자였던 내가 팀장과 의논해 퇴근길 목적지를 바꾼 것은 시 한 편 때문이었다. 시는 이틀 전인 9월7일, 사고가 발생한 당일 <연합뉴스>가 보도한 단 네줄짜리 스트레이트 기사에 댓글로 붙어 있었다. 당시 기사 전문은 이러했다. “7일 오전 2시께 충남 당진군 석문면 모 철강업체에서 이 업체 직원 김모(29)씨가 작업 도중 용광로에 빠져 숨졌다. 동료 A(31)씨는 ‘김씨가 5m 높이의 용광로 위에서 고철을 넣어 쇳물에 녹이는 작업을 하던 도중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고 말했다. 용광로에는 섭씨 1600도가 넘는 쇳물이 담겨 있어 김씨의 시신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업체 관계자 등을 상대로 안전관리 소홀 여부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사고 당일 밤, 아이디 ‘alfalfdlfkl’은 포털사이트 다음에 노출된 기사에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시를 남겼다. 해당 댓글에만 답글이 400개가 넘게 달렸다. 차가운 스트레이트 기사에 달린 뜨거운 댓글에 사람들은 비로소 눈물이 났다고 했다. 훗날 이 시를 쓴 이는 ‘제페토’라는 필명으로 <그 쇳물 쓰지 마라>란 시집을 엮어내기도 했다. 2010년 한해에만 일터에서 사고로 숨진 사람이 1931명, 그중 추락사만 417명(고용노동부 ‘산업재해현황’ 기준)에 이르렀다. 사고 기사의 말미에는 ‘경찰이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라는 문장이 붙곤 하지만 정작 그 경위 조사가 끝날 즈음 관심 갖는 이는 많지 않다. 끔찍한 사고임에도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댓글 시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지 않았다면 이 사고 역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시를 보고 무작정 당진으로 달려갔지만 사고가 난 회사 이름도, 장례식장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자정께 도착해 수소문 끝에 장례식장을 찾았다. 빗줄기는 더 거세져 있었다. 장례식장은 빈 관을 가져다 놓은 채 차려져 있었다. 사고가 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섭씨 1600도 용광로에서 산화한 그의 몸을 찾을 길이 없어서였다. 가을비에 몸은 떨리고 섭씨 1600도의 열기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빈 관 앞에서 울지도 못하고 텅 빈 눈을 하고 있는 부모와 누나들을 보니 차마 어떤 질문도 할 수 없었다. 숨진 김씨는 막내아들이었다. 조용히 조문을 하고 나오려는데 그의 누나가 물었다. “우리 동생 친구인가요?” 만 29살.
그와 나는 동갑이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작업복을 입은 동료들은 삼삼오오 모여 퍼붓는 비를 바라보며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다음날은 사고가 난 용광로를 식힌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제야 용광로 온도가 진입할 수 있을 만큼 떨어져 경찰이 출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고 장소가 철강회사 안 공장이기에 회사의 허가 없이 접근하기란 불가능했다. 경찰차를 얻어 타고 과학수사대 장화까지 빌려 신은 끝에 사고 현장에 잠입했다. 용광로 바로 앞에서 기자임이 들통나 회사 관계자와 실랑이를 벌이고서야 사고 현장을 취재할 수 있었다. 추락사가 발생하는 노동환경을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여 닿은 죽음의 장소였다.
밴드 두번째달이 참여한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 두번째달 유튜브 갈무리
경찰과 함께 진입한 용광로 안은 여전히 뜨거웠다. 빌려 신은 고무장화가 녹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 용광로 안으로 들어가니 섭씨 1600도로 이글대던 15t의 쇳물이 식어 허연 쇳가루만 가득했다. 쇳가루 위엔 손이 닿으면 바스러질 듯한 뼛조각 몇개가 흩어져 있었다. “사람이 섭씨 1600도의 쇳물에 떨어지게 되면 일단 그 온도에 몸이 곧바로 타게 되는데, 고인의 경우 가장 두꺼운 다리뼈와 두개골 정도가 일부 남은 듯합니다.” 함께 들어간 과학수사 담당 경찰의 설명이었다. 용광로 밖에는 유족들이 서 있었다. 작디작은 유골을 조심스레 떠내는 경찰을 보고 있던 김씨의 부모와 누나들이 오열했다. 야근조라며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 출근을 했던 아들, 사고 소식만 남기고 주검도 볼 수 없게 된 동생이 부서지기 직전의 뼛조각으로 돌아왔다. 용광로 앞에서 입관식이 진행됐다. 하얀 창호지를 깐 관 안으로 유골 조각이 들어갈 때 모든 기계의 가동이 중단된 공장에서 유족들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입사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29살 청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7일 새벽, 김씨는 여느 때처럼 작업복 차림으로 용광로 주변에서 일하고 있었다. 4조 3교대로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에서 그는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근무했다. 이 회사에서는 하루에 100t 분량의 고철을 용광로에 넣어 7~8차례 녹여냈다. 하루 세번 20여분씩 ‘스프레이 보수 작업’이라는 정리 작업도 진행했다. 용광로에 15t의 쇳물만 남긴 뒤 위쪽 뚜껑 주변에 낀 자잘한 쇳조각들을 용광로 안쪽으로 넣거나 밖으로 빼내는 작업이었다. 2층 높이의 용광로 뚜껑 주변에는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었다.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 허술한 쇠사슬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뚜껑 주변 이물질이 잘 제거되지 않아 팔을 뻗다가 섭씨 1600도 열기가 잠깐이라도 얼굴에 훅 끼치면 누구라도 순식간에 정신을 잃게 된다. 사고가 나던 날 새벽 1시20분께 어김없이 스프레이 보수 작업이 시작됐다. 새벽 1시40분 김씨의 동료는 김씨가 철근 조각을 치우려고 파이프를 들고 애쓰는 모습을 봤다. 잠깐 뒤 쳐다봤을 때 김씨는 쇳물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동료들은 김씨가 빠진 사실을 알고도 이글대는 용광로 안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었다.
김용균재단이 참여한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 김용균재단 유튜브 갈무리
2010년 당시에도 죽음의 과정이 보도된 뒤 여론이 들끓었다. 노동·보건의료 분야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산재 사망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큰 변화는 없다. 당시 기자회견에 나섰던 임상혁 녹색병원장은 최근 전화통화에서 “지난 10년 동안 철강회사나 조선소 등 추락사고가 일어나는 현장에 대해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해왔지만 큰 변화 없이 안타까운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용광로 추락 사고가 반복되자 기업들 사이에서 유족과의 합의 방식에 대한 정보까지 공유됐지만 안전장치에 대한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2015년 인천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가 쇳물에 빠져 숨졌을 때도 안전난간 등 기초적인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안전보건공단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제대로 된 난간 없이 쇠사슬 하나 걸쳐 놓은 공장에서 추락사는 계속됐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한해 일터에서 사망한 사람은 2142명, 그중 추락사가 376명(2018년 기준, 고용노동부 ‘산업재해현황’)에 이른다. “대표적인 후진적, 재래적 산재인 추락사가 매번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아주 기초적인 안전 조치만 취해도 예방이 가능하고, 돈도 많이 들지도 않는데 그것조차 하지 않은 것이 지난 10년의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산재 사망은 ‘살인’이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의 말이다. 그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을 위해 노력해왔다. 노래로 만들어진 ‘그 쇳물 쓰지 마라’는 가수 하림의 제안 이후 많은 정치인과 예술인 등의 참여로 함께 불리고 있다. 노래와 더불어 산재 발생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관한 관심도 퍼져나가고 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제기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최근 서명 인원 10만명을 돌파했다. 김 이사장은 2018년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다. 정의당은 제21대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이상윤 대표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은 결국 산재 문제 해결을 위한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당진시립예술단이 참여한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부르기. 당진시립예술단 유튜브 갈무리
거듭되는 산재에 지지부진한 변화라고 실망할 수도 있지만 ‘공감대’의 힘은 크다. ‘그 쇳물 쓰지 마라’란 시가 퍼지고 노래가 불리는 사이, 그 쇳물은 어찌 됐을까? 10년 전 사고 당시부터 해당 철강회사는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시에 공감하는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어 고민을 해온 터였다. 확인 결과, 10년 전 그 쇳물은 지금껏 쓰이지 않았다. 회사 쪽에서는 15t 쇳물 전부를 다시 녹인 뒤 둥근 형태로 굳혀 회사 뒤편 녹지에
상징물 형태로 세워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처럼 노래처럼 김씨의 부모가 명절에 와서 보고 가기도 한다고 했다. 관심이 모아지고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면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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