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키는 2미터가 조금 넘는다. 더 불행한 사실은 지금도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매년 12월 31일 키를 잰다. 작년에는 2미터 3센티미터였다. 올해는 2미터 10센티를 무난히 돌파할 것 같다. 불편할 것 같지만 키가 크니 좋은 점도 많다. 세상을 더 멀리, 더 높은 곳까지 바라볼 수 있다. 아 참, 내가 빼먹은 말이 있다. 2미터가 넘는 나의 키는 내 영혼의 키를 말한다. 그리고 내 영혼의 키를 키워준 사람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CEO들이다. 내게 광고를 의뢰하고 광고인으로서 만난 기업의 대표들이 나를 성장시켰다. 다양한 분야의 대표를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광고인이라는 직업의 가장 큰 축복이었다.
CEO는 '쉬운 사람'이 아니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기업을 일궈온 '어려운 사람'이다. 나는 매번 그들의 끈기, 성실함, 통찰력에 고개가 숙여졌다. 얼마 전 서울에서 만난 CEO 역시 나를 성장시켰다.
연락이 온 곳은 서울의 한 북카페였다. 마포에 있다기에 찾아간 빌딩 앞에서 나는 머뭇거렸다. 9층짜리 건물이 3층의 성형외과만 제외하고 모두 책을 보는 공간이었다. 미쳤다고 생각했다. 마포대교가 지키는 한강이 바로 보이는 빌딩에 왜 이런 짓을 했을까? 미팅 자리에 나온 CEO와 두 시간 남짓 얘기하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실은 그 북카페 대표가 3층 성형외과 원장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우리나라 성형계에서 아주 저명한 분이셨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 빌딩 전체를 북카페로 만들었을까? 어느 날 수술을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진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뭘까? 내가 하고 있는 수술일까? 내일 당장 사고로 죽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데….'
그렇게 대표님이 찾은 답이 바로 책이었다. 책 속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이야말로 우리 영혼을 성장시키는 최고의 도구라고 말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을 모아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고 토론과 사색을 이어갔다. 만날 때마다 사람들의 영혼의 키가 자라 있었다. 그것이 진정한 생명이라고 봤다. 책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것을 가르쳐줬다. 힘든 일에서 도망치지 않는 법, 오늘 하루를 버티는 법, 칠흑같이 어두운 삶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더 이상 오늘 아침에 뜨는 해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삶 속에서 맞닥뜨린 문제에 책은 늘 해결책을 보여줬다. 한 CEO의 결심이 죽어 있던 사람들에게 생명을 선물한 것이다. 작은 기적들이 마포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광고인으로서 산 지난 10년은 찬란한 시간들이었다. 93센티에 불과했던 나의 키는 내가 만난 CEO를 통해 2미터가 넘게 되었다. 그들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무언가 남들과는 다른 집요함, 무언가 남들과는 다른 끈기, 무언가 남들과는 다른 어이없을 정도의 긍정적인 태도가 있었다. 커다란 문제 앞에 도망치지 않고 해결해가는 그들의 DNA에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삶은 문제를 만나고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다. 광고밥을 먹으며 다양한 CEO를 만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자신을 어려운 환경으로 밀어 넣으면 초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기업가 정신이고 남들과는 다른 삶의 태도라고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기업의 인턴일 수도, 대리나 과장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잊지 마라. 당신은 당신 인생의 CEO라는 것을 말이다.
September 07, 2020 at 02:5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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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나의 키는 자라고 있다 -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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